[성공시대] '완벽주의가 성장 원동력'
가능하면 많은 이익을 타운에 환원하기 위해 좋은 행사를 후원하고 저소득층에 봉사할 수 있는 비영리 단체 설립도 고려 중입니다."
심플터치 그룹 박정흠 사장(35)은 정도를 걷는 사업이 되도록 노력하면서 보다 효율적인 운영을 하다보니 이제는 심플터치가 9개 업체를 거느린 그룹으로 변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룹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는 것이 다소 우습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멋지게 커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룹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LA 4.29폭동이 일어난 직후인 1993년. 박사장은 '심플 홀세일'사를 차렸다. 리커 스토어나 소규모 그러서리 마켓에 물건을 공급하는 회사였다. 9개의 독립 업체를 보유하고 있는 지금의 심플터치 그룹의 모태이기도 하다.
박사장은 "당시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여러 업소를 운영하는 게다가 그룹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며 "하지만 사업을 할 수록 내가 직접 관여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갖춰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심플 홀세일'을 운영하다 재고가 많이 쌓이면서 박사장은 직접 마켓을 차렸다. 재고가 남아봐야 물류 비용만 늘어나기 때문에 이를 가만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켓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체크 캐싱도 하게 됐다.
체크 캐싱을 하면서 부도 수표나 문제점이 발견되면서 컬렉션 에이전시를 운영하게 됐다.
다른 미국 회사에 맡기면 시간도 많이 걸릴 뿐 아니라 세세한 사항을 알 수 없어 답답했기 때문이다. 컬렉션 업무를 보면서 변호사가 필수라는 사실을 안 뒤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함께 변호사 사무실도 운영하고 있다. 모두 하나의 업무에서 시작해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한 분야의 회사를 차근히 만들어 간 것이다.
박사장은 "내가 모든 것을 조종하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니다"라며 "원활하게 필요한 업무를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2000년에 들어서는 인터넷 붐을 타고 컴퓨터와 셀폰 업계로 진출했다. 컴퓨터는 물론이고 셀룰러폰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면서 두가지가 함께 맞물려 돌아갈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심플 터치 와이어리스'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회사가 지금은 LA 한인타운과 다운타운 밸리 지역에 3곳의 지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2001년 부터는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과 중국에 잇따라 지사를 설립했다. 단순히 컴퓨터나 셀룰러폰을 판매하는 수준이 아니라 어차피 물건을 해외에서 들여올 거면 직접 하는게 낳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박사장은 현재 가능하면 한인타운의 비중을 줄이고 타지역이나 해외로 눈을 돌리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포화상태로 접어든 타운 보다는 잠재성이 충분한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물리적으로는 타운을 벗어나더라도 마음은 언제나 이 곳에 남아있다는 것이 박사장의 설명이다.
박사장은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지금도 여러 문제들 때문에 확장 정책을 잠시 보류하고 있다"며 "하지만 어느 정도 사업에 괘도에 오르면 봉사활동을 꾸준히 펼쳐 나가 고향과도 같은 한인 타운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